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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동네

자몽핑크머리 소녀




여름을 관통하던 무성한 초록들이 이제 줄기차게 내리는 새벽 비속에 가을을 머금는 것 같다.

스트로우로 가을을 빨아올리는 듯한 새벽비 소리다.


더위에 지쳐가던 여름의 끝자락은 어디선가 이미 가을 물이 들고 있을 것이다. 

가을의 빛깔이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미 가을은 스타트 라인을 넘어 달려가고 있다.


만화에서 나온듯한 소녀는 얇은 초코과자 상자에 택배 주소를 부쳐 아주 작은 수첩을 

친구의 생일선물로 보내려고 편의점에 왔었다. 그런데 나는 그만 주소지를 착각해 천원을 더 받아버렸다.


지난 일요일 버스정류장서 소녀를 만나자마자 나는 천원을 건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둘 다 기분 좋은 구면이 되었다.


오늘 저녁 소녀가 큰 꽃 배낭을 메고 편의점에 들어서는데 이미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난 "드디어 왔네" 하며 환대를 했다.


눈부신 머리카락이 편의점을 환하게 물들였다.

"너무 예쁜 색깔이네. 무슨 색이라고 하지?"하고 물으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좋아 빙그르르 돌며 예쁜 빛깔의 머리카락을 보여준다. 

"자몽 핑크예요. 네이버 치면 나와요."한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색깔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노란빛이 든 핑크, 골드 핑크랄까?

지난번 보았을 때와 다른, 소녀의 금빛 후광을 본듯하다.


"안녕 잘 가" 인사를 하고 소녀를 보내는 나의 가슴속엔

 이미 소녀가 앉을 의자 하나가 들어서 있는 것 같다.


'자몽 핑크 머리 소녀야 천상의 빛깔로 물들 가을이 너에게도 찾아오길...' 

새벽비 소리에 깨어 문득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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